⏳ 서론 | 그늘진 위대한 이야기, 이제야 빛을 보다
역사는 종종 가장 중요한 이름을 뒤로 감춘다.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는 그런 ‘숨겨진 인물들’을 우리 앞에 다시 불러세운다. 1960년대 미국, NASA 우주 개발의 현장에서 흑인 여성 수학자들이 실존했다는 사실은, 오랜 시간 침묵 속에 묻혀 있었다.
이 영화는 그들의 지성과 용기, 그리고 조용한 저항을 온전히 보여주며, ‘과학’과 ‘차별’이라는 두 무거운 주제를 탁월한 균형감으로 풀어낸다.
단지 여성 영화도, 흑인 영화도 아니다. 이것은 모두의 가능성과 존엄에 대한 이야기다.
🛰️ 시대적 배경 | 차별과 경쟁이 공존하던 미국의 우주 개발기
영화의 배경은 1961년 미국. 인종분리정책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던 남부 지역이었고, 흑인 여성은 사회 전반에서 가장 약한 존재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 시기는 동시에 미소 냉전 체제 속, 우주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던 때이기도 하다. 소련이 먼저 유인우주선을 발사하자, NASA는 이를 따라잡기 위해 ‘메르큐리 계획’을 가동한다.
과학기술의 진보와 사회적 편견이 충돌하는 지점. 히든 피겨스는 바로 그 한가운데에 서 있던 세 명의 여성 — 캐서린 존슨, 도로시 본, 메리 잭슨 — 을 통해, 우리가 익히 알던 우주 개발사의 또 다른 주역을 조명한다.
📈 줄거리 | 계산이 아닌 확신으로 세상을 움직이다
캐서린 존슨(타라지 P. 헨슨)은 천재적인 수학자다. NASA에서 궤도 계산을 담당하게 되지만, 백인 중심의 팀 내에서 그녀는 복사기 사용조차 제한받는다. 심지어 ‘흑인 전용 화장실’ 때문에 하루 수십 분을 허비해야 할 정도다. 하지만 그녀는 정확한 수식과 궤도 계산으로 자신을 증명하며, 결국 존 글렌의 우주 비행 성공을 이끌어낸다.
도로시 본(옥타비아 스펜서)은 공식 직책은 없지만 실질적인 팀의 리더다. 그녀는 IBM 컴퓨터가 도입되는 것을 예의주시하고, 독학으로 포트란 언어를 배워 흑인 여성 팀 전체가 해고되지 않고 ‘프로그래머’로 전환될 수 있도록 이끈다.
메리 잭슨(자넬 모네)은 항공 엔지니어를 꿈꾸지만, 법적으로 흑인 여성이 교육받을 수 없는 학교에만 그 과정이 존재한다. 그녀는 재판을 통해 수업 청강을 허가받고, 결국 NASA 최초의 흑인 여성 엔지니어가 된다.
이 세 여성의 이야기는 각기 다르지만, 모두 ‘실력’과 ‘용기’, 그리고 ‘연대’를 통해 편견을 넘어선다. 영화는 이들의 삶을 교차 편집하면서, 개인의 변화가 조직과 사회를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세밀하게 그려낸다.
🎬 총평 | 무겁지 않게 그러나 진중하게
히든 피겨스는 메시지가 분명한 영화이지만, 그것을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오히려 유쾌하고 생동감 있는 전개, 음악, 그리고 섬세한 연기로 관객을 이야기 속으로 자연스럽게 끌어들인다. 감독 시어도어 멜피는 자칫 교조적으로 흐를 수 있는 주제를 인간적인 시선으로 다루며, 감정의 과잉 없이도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타라지 P. 헨슨, 옥타비아 스펜서, 자넬 모네 세 배우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고통과 싸우고, 성장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꿔나간다. 세 사람의 시너지는 단순한 드라마 이상의 감동을 이끌어낸다.
이 영화가 특별한 건, 단지 ‘보이지 않던 여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이 ‘보이지 않게 만들었던’ 구조와 사회를 조용히 해체해나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 마무리 | 진짜 주인공은 언제나 가장 뒤에 있다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역사도, 알고 보면 절반밖에 보지 못했을지 모른다. 히든 피겨스는 과거를 정정하면서, 현재를 돌아보게 만든다. 지금도 어딘가에 또 다른 ‘히든 피겨스’들이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역사는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숨겨지지 않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