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그냥 식물 아니에요. 이건... 내 친구예요.”
⏳ 서론 | 사랑인가, 구원인가
잔혹한 장르 안에 감정을 심는 일은 어렵다. 하지만 뤽 베송 감독의 *레옹(Leon: The Professional)*은 그 모순된 조합을 이뤄낸 작품이다. 킬러와 소녀의 만남이라는 위험한 설정, 폭력과 순수함의 공존, 냉혹한 도시에서 피어난 연대의 감정.
1994년 개봉 이후 수많은 논쟁과 해석을 불러온 이 영화는 단지 범죄 액션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적인 결핍을 채우려는 두 존재가, 서로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는 이야기다.
🗽 시대적 배경 | 뉴욕의 그림자에서 피어난 유대
영화는 1990년대 초반 뉴욕을 배경으로 한다. 도시의 고층 빌딩과 지하, 불법과 권력이 뒤엉킨 공간은 레옹의 고립된 삶과 절묘하게 겹친다. 그는 미국 사회 안에서 이름 없이 살아가는 ‘이방인’이고, 그만큼 말도, 감정도 없이 자신을 철저히 닫고 살아간다.
그 도시 한복판에서 마틸다라는 소녀가 나타난다. 그녀는 폭력적인 가족 안에서 자라나며 이미 어른보다 더 많은 것을 알아버린 존재다. 뤽 베송은 이 둘을 통해 ‘도시의 가장자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이 만들어낸 또 다른 공동체를 그린다.
🧳 줄거리 | 고독한 살인자와 상처 입은 아이
레옹(장 르노 분)은 청소부라는 은어를 쓰는 킬러다. 정해진 규칙 속에 철저히 고립된 삶을 살아가던 어느 날, 이웃집에 사는 12살 소녀 마틸다(나탈리 포트만 분)가 그의 삶에 끼어든다. 마약에 연루된 아버지로 인해 가족이 몰살당한 직후, 마틸다는 유일하게 살아남아 레옹의 집 문을 두드린다.
레옹은 처음엔 그녀를 거부하지만, 점점 마음을 열게 된다. 마틸다는 자신을 킬러로 키워달라고 요구하고, 자신은 사랑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관계는 단순한 로맨스도, 가족도 아니다. 그것은 상처와 결핍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구원하는 방식이다.
이야기는 마틸다가 가족을 죽인 악덕 경찰 스탠스필드(게리 올드만 분)에게 복수하려 하면서 급격히 전개된다. 레옹은 마틸다를 위해 싸우고, 마지막 순간엔 그녀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삶을 끝낸다.
식물 한 그루를 안고 살았던 남자는, 마지막에 진짜 사람을 위한 삶을 선택한다.
🎬 총평 | 감정과 장르가 충돌하는 그 경계에서
레옹은 범죄 영화이자 멜로이고, 스릴러이자 성장 영화다. 이 모든 장르적 혼종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이유는 캐릭터의 힘이다. 장 르노는 말이 적은 레옹의 고독과 따뜻함을 단단히 구현하며, 나탈리 포트만은 단 12살의 나이로 감정의 파고를 넘나드는 마틸다를 완벽히 소화한다. 이 영화가 오늘날까지도 회자되는 가장 큰 이유다.
게리 올드만의 연기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사이코적이고 비논리적인 악당 스탠스필드를 기이할 정도로 매력적으로 연기하며, 영화에 강렬한 불균형을 만들어낸다.
뤽 베송은 폭력과 정서, 어둠과 따뜻함을 한 화면 안에 담아낸다. 그의 연출은 서정적이면서도 건조하고, 감정을 과하게 드러내지 않기에 오히려 더 아프다. 마지막 총격전 장면은 장르적 클라이맥스인 동시에, 정서적 절정이다.
✍️ 마무리 |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마지막 식물이다
레옹은 질문을 남기는 영화다. 이들의 관계는 무엇이었을까? 사랑이었을까, 혹은 구원이었을까? 정답은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들은 서로를 통해 세상을 처음으로 경험했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감정을 공유했다는 것.
마틸다가 마지막에 식물을 땅에 심으며 말한다. “이제 여기가 집이야.”
이것은 레옹이 끝내 가르쳐준 유일한 삶의 방식이자, 그에게 바치는 가장 조용한 헌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