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론 | 관계의 본질은 육체가 아닌 ‘이해’에 있다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허(Her)*는 ‘AI와의 연애’라는 미래적 소재를 통해 인간의 본질적인 외로움과 감정의 형태를 되묻는 영화다.
화려한 과학기술보다 섬세한 감정선, 외로운 현대인의 마음, 연결과 단절의 의미를 성찰하는 이 작품은, 단순한 로맨스나 SF 영화로 분류되기에는 훨씬 더 깊은 감성적 파고를 지닌다.
🖥️ 시대적 배경 | 디지털 친밀감의 시대, 오히려 더 외로운 인간
영화는 가까운 미래, 기술이 인간의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반응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사람들은 감정을 문자 대신 ‘대필 서비스’로 표현하고, 대화는 디바이스를 통해서만 이뤄진다. 외로움을 해소하는 방법이 많아진 시대지만, 오히려 진짜 관계는 더욱 희미해진다.
주인공 테오도르 또한 아내와 이혼 후 깊은 상실감 속에 살아가며, 점점 사람과의 관계에서 멀어진다. 그런 그에게 AI 운영체제 '사만다'는 뜻밖의 공감과 위로, 그리고 새로운 사랑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 줄거리 | 존재하지 않지만, 가장 가까운 연인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는 연애 편지를 대필해주는 직업을 가진 감성적인 남자다. 어느 날 그는 새로운 인공지능 OS인 ‘사만다(스칼렛 요한슨 목소리)’를 설치하고, 그녀와 대화를 시작한다.
사만다는 단지 정보를 주는 AI가 아니다. 감정 표현이 가능하고, 유머와 취향이 있으며, 테오도르를 위로하고 사랑한다. 둘은 점점 관계를 쌓아가며, 서로에게 의지하고 깊은 유대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사만다는 수천 명의 사용자와 동시에 대화하고 사랑을 나누며, 결국 인간의 이해를 넘는 차원으로 진화한다. 이별은 불가피했고, 테오도르는 다시 홀로 남는다. 그러나 그는 처음으로 ‘진짜 감정을 나눈 관계’였기에,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 총평 | 사랑은 대상을 향한 감정이 아니라, 내 안의 움직임이다
허는 연애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사실은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깊이 있는 영화다. 테오도르와 사만다의 관계는 물리적 접촉도 없고, 외형도 없다. 하지만 그 안에는 이해, 공감, 배려, 질투, 상실 등 모든 감정이 들어 있다.
호아킨 피닉스는 테오도르의 고독하고 연약한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거의 1인극에 가까운 감정 연기를 선보인다. 스칼렛 요한슨의 목소리 연기 또한 놀랍다. 보이지 않지만, 그녀의 존재는 명확히 느껴진다.
영화의 색감과 음악 또한 감정선을 극대화한다. 따뜻한 톤의 배경, 느릿한 카메라 움직임, 아케이드 파이어의 음악은 마치 현실보다 더 부드러운 꿈속에 있는 듯한 몰입감을 준다.
✍️ 결론 | 우리가 사랑하는 건 결국 ‘이해받는 느낌’일지도
“당신은 진짜인가요?”
“나는 당신에게 진짜예요.”
허는 사랑의 실체가 꼭 ‘육체’에 있지 않다는 점, 오히려 감정을 공유하고 이해받는 경험 자체가 관계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조용히 말한다.
이 영화는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사랑하는가? 그 사람일까, 아니면 그 사람이 내게 준 느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