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론 | 뿌리내리는 삶에 대한 조용한 헌사
*미나리(Minari, 2020)*는 거대한 사건도, 극적인 전개도 없는 영화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삶의 숨결은 누구보다 뜨겁다. 한국계 미국인 리 아이작 정 감독이 자전적 경험을 토대로 연출한 이 작품은,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시골로 향한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를 정갈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2021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윤여정 배우가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국내외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지만, 이 영화가 전하는 울림은 수상 이력과는 별개로 보편적이고, 잔잔한 감동을 전한다.
🛤️ 시대적 배경 | 한국 이민자 가족의 1980년대 미국 정착기
영화의 배경은 1980년대 미국 아칸소. 병아리 성별을 감별하는 기술로 생계를 이어가는 제이콥(스티븐 연)은 자신의 땅에서 직접 농사를 짓고 성공하고자 가족을 데리고 시골로 이주한다.
도시에서 살아오던 아내 모니카(한예리)는 황량한 트레일러 집과 불안정한 미래에 점점 지쳐가고, 두 아이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며 가족의 중심에서 갈팡질팡한다. 그들에겐 뿌리도 없고, 미래도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그저 ‘잘 살아보려는 마음’ 하나로, 각자의 자리를 지켜간다.
🌱 줄거리 | “잘 자라면, 그게 성공한 거지”
제이콥은 한국 채소를 재배해 한인 시장에 공급하려는 꿈을 안고, 험한 밭을 일군다. 아내 모니카는 이런 남편을 이해하면서도, 아이들의 안정된 삶을 위해 도시로 돌아가길 원한다.
그러던 중 모니카의 어머니 순자(윤여정)가 함께 살게 되며 가족의 균형은 다시 흔들린다. 특히 막내 데이빗은 말투도 행동도 어색한 할머니를 처음엔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둘은 서서히 마음을 열고, 서로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그들이 함께 키워온 희망은 한순간 화재로 잿더미가 되고 만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순자는 몰래 심어두었던 ‘미나리’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사실이 조용히 밝혀진다. 영화는 그렇게, 잃는 이야기처럼 보이면서도 ‘남는 이야기’를 조용히 마무리한다.
🎬 총평 | 조용하지만 깊은 감정의 파동
미나리는 “이민자”라는 소재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어떤 환경에서도 서로를 지탱하고 살아가려는 가족의 모습에 집중한다. 영화는 끝내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 삶의 울림이 있다.
스티븐 연의 절제된 연기, 한예리의 복잡한 감정선, 윤여정의 유쾌하지만 따뜻한 존재감은 영화 전체의 감정을 조율한다. 특히 윤여정의 연기는 단순한 ‘할머니’를 넘어, 삶의 지혜와 인내를 대변하는 상징으로 남는다.
카메라는 느리게 움직이고, 음악도 절제되어 있으며, 장면은 정지화면처럼 평온하다. 이 모든 구성은 화려하지 않아도 단단한 삶의 태도를 영화적으로 잘 담아낸다.
✍️ 결론 | 미나리는 어디서든 자란다, 우리도 그렇다
“미나리는 알아서 자라.”
이 말은 단지 풀의 특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누구든, 어디에서든, 마음만 있다면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뿌리가 아니라, 물과 햇볕이 중요한 법. 이민자뿐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영화는 그런 말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그래서, 이 영화는 미국영화이자, 한국영화이며, 무엇보다 모든 사람의 이야기가 된다.